주님의 이름으로 러시아 사역에 동역자 되신 형제/자매님들께 모스크바에서 문안 인사드립니다.
2006년 1월의 시작과 함께 이곳 모스크바로 파송된 지 오늘로 어느덧 7개월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끝이 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던 혹독한 추위가 가고, 짧은 기간이지만 봄 햇살을 보여주던 동토의 땅이 이제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며 태양의 계절 여름으로 옷을 갈아입었습니다.(7월 중순 두 차례 우박이 내리기는 했지만)
겨울, 봄, 여름을 거치면서 참 많은 일들로 인해 러시아에서의 첫해를 웃음, 울음, 기쁨, 슬픔, 원망, 감사, 찬양 등으로 초보의 티를 내며 작은(?)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기대와 두려움, 설렘으로 선교의 첫발을 내딛는 시작부터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귀한 도움의 손길들과 후원의 동역자들을 보내주셔서 매 순간순간 한없는 기쁨과 감격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모스크바에서의 순조로운 정착(주거환경, 교육, 언어훈련, 재정적 만나의 공급 등)은 항상 저희 가족의 입에서 감사라는 단어를 달고 살게 해주었습니다. 이러한 감사의 조건들이 있었기에 100여년 만에 찾아온 모스크바의 추위(영하 45도)도 저희 가정의 하나님에 대한 마음을 얼어붙게 할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초보 선교사의 성공적 정착 과정이 사단의 세력을 두렵게 했던지 단란하기만 하던 저희 가족에게 시련이 닥치며 고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3월경 오른쪽 팔의 이상을 발견하고 병원을 찾기 시작한 아내 조은주 선교사는 이곳 종합병원에서 관절염이라는 진단과 함께 약을 처방받아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병명을 알고 나니 다소 안정이 되며 기분상 좋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차도는 없었고 급기야 한의원, 대학병원 등등 이곳저곳의 문을 두드리며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처음에 가볍게 생각했던 사안이 저의 무지함과 불감증으로 아내의 병을 키웠다는 죄책감과 두려움으로 바뀌고, 선임 선교사님들과 상의 끝에 아내가 한국으로 들어가 치료를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한국병원에서 상태가 심각하다며 정밀검사를 해보고 판단을 하겠다는 말을 전해 듣고 정말 앞이 캄캄하더군요.
그 때 제 머리를 스치며 지나간 생각은 기도의 부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곳 선교지에 와서 가정 예배가 죽고, 기도를 쉬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던 제 모습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 순간 무릎을 꿇고 회개하며 눈물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런데 하나님! 이번 일을 통해 저희 가족에게, 아니 제게 무엇을 가르치시려고 하십니까?”
“만일 가르치실 것이 있다면 아내가 아닌 저를 치셔서 가르치시지요?”
괴롭고 지루하던 2주의 시간이 지나고 조직검사를 거쳐 나온 결과는 관절염이 아닌“자기면역 질환에 따른 경피증”이라는 병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혈액검사를 통해 국소성인지 아니면 전신성인지를 알아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만일 전신성일 경우는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고, 그 때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엄마의 상태를 알리지 않고 혼자 눈물을 삼키려니 너무 힘들더군요.
그 순간 그동안 머리로만 알았던 하나님께서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시던 사건이 마음으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고통을 알겠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살려주세요!”
이런 상황에 설상가상으로 윗집의 파이프가 터져서 집에는 물난리가 나고(다행히도 하수구가 아닌 상수도), 물난리를 어느 정도 수습하고 젖은 집안을 말리기 위해 아는 형제의 집에 히터를 빌리러 갔다가 시내 한복판에서 멀쩡한 여권과 비자를 가지고 있음에도 특수경찰들에게 잡혀 끌려 다니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욕을 먹고 멱살을 잡히고…. 순간 러시아가 싫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도 저를 놓지 않고 계시던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주셨고, 핸드폰으로 대한민국 대사관과 통화를 시도하자 특수경찰들은 신경질을 내며 제 여권을 멀리 던지며 가라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돈을 요구하는 것이었다고 하는군요.)
이후 아내의 치유를 위해 식구들은 물론이고, 동역해 주시는 모든 형제/자매님들의 중보기도가 밤낮으로 이어졌고(일부에서는 금식 철야기도까지), 그 기도가 하나님을 감동시켜 아내는 국소성으로 판명을 받았고(국소성은 전신성으로 발전한 경우는 지금까지 보고된 적이 없다고 합니다. 할렐루야!), 처방약을 받아 모스크바로 돌아왔습니다. 이 일을 통해 중보기도의 능력과 기도/예배의 중요성을 하나님께서는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영적전쟁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거주 등록 여행(러시아는 특성상 1년 비자를 가지고 있어도 6개월에 한 번씩은 러시아를 떠났다가 다시 들어와서 거주등록을 해야 하는 제도가 있습니다.)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집안일을 도와주시기 위해 모스크바에 아내와 함께 들어오셨던 어머니와 거주등록 여행을 주변국으로 떠났는데 여행 이틀째에 평상시에 꼼꼼하게 잘 챙기던 제가 소매치기를 당해서 모든 여행 경비와 그 달의 생활비를 잃어버렸던 것입니다.(나중에 감사드린 것이지만 다행히도 여권과 돌아갈 기차표는 무사했습니다.) 다시 연약한 저는 하나님께 원망을 했습니다.
“하나님 너무하십니다.”
“하나님! 동역자들의 사랑이 깃든 귀한 헌금, 선교사의 정말 피 같은 선교비를…아아~”
“하나님! 왜? 이번엔 또 무얼 가르치시려고요?”(다소 신경질적으로)
이번에는 ‘소유’였습니다.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요. 아무리 지키려고 해도 가져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큰 진리를 소매치기 사건을 통해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지금은 느낍니다. 기도와 예배의 중요성을. 그리고 인정하고 알았습니다. 그동안 소유에 대해 인간적으로 교만했고 나의 능력으로 재정을 채우는 것이라는 생각이 착각이며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인 되심을,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십자가의 죽으심을 바라보시던 하나님의 심정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느낄 수 있게 되었음을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저희 공혁/조은주 선교사 가정의 작은 러시아 선교사역의 역사는 이렇게 뒤죽박죽인 가운데 하나님의 신실하신 인도하심과 세밀한 가르치심으로 쓰여 가고 있습니다.
이 선교편지를 통해 그동안 아내 조은주 선교사의 병을 위해 중보기도 해주신 모든 형제/자매님들과 꾸준하게 기도와 재정으로 후원해 주시는 모든 동역자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이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기도제목을 나누며 소식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1. 가족 모두의 건강을 위해(특히 아내 조은주 선교사의 완전한 치유를 위해)
2. 언어 훈련을 열심히 할 수 있도록
3. 민이와 진이가 새로 전학한 학교에서 잘 적응하도록
4. 가정 예배와 중보기도, 개인 경배(묵상)의 시간이 생활화 되도록
5. 부족한 재정을 만나처럼 채워주시기를 위해
2006년 8월 4일 모스크바에서 공혁/조은주 민, 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