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주/김현숙 선교사(러시아-연해주)

연해주에서

고추잠자리들이 한낮의 태양도 덮지 않은지 사루비아 주위를 빙빙 돌며 짝 짖기에 몰두합니다. 심술 굳은 꼬마 아이가 나타나 쫓아 가보지만 이내 피해 저만치 달아나버립니다. 조석으로 차가운 공기를 감지했을까 지칠 줄 모르는 구애는 계속됩니다. 이제 곧 무덥던 여름해도 기울었기 때문이겠죠.
가을에 피는 꽃들은 더 원색적인가 봅니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워요. 특히 러시아인들은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같은 꽃도 형형색색으로 여러 종류를 개발했습니다. 산책을 하며 여러 꽃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습니다.

지난 6월에 모스크바와 터키를 다녀왔습니다. 모스크바는 여기서는 극과 극입니다. 철도는 일주일, 비행기는 아홉 시간 걸립니다. 가장 큰 영토를 가진 나라입니다. 모스크바에서 지역 대회가 있었습니다. 모스크바는 침체의 늪을 벗어나 급성장하고 있었습니다. 도시 근교의 울창한 숲이 인상적이었고 부러웠습니다. 터키에서는 제가 소속된 공동체 리트릿이 있었습니다. 귀한 동역자들이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맡겨진 귀한 사명을 다하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음에 서로에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터키에서의 모임 후 몇 곳의 초대교회 활동무대와 고대 문명이 누렸던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는 시간을 통해서 많은 감명도 받았습니다.
저희 부부가 결혼 20년을 맞이하는 해이기도 하는데 주께서 우리에게 귀한 선물로 주신 시간들이었기에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돌아온 후 7월부터 이 지역을 방문하는 후원자들이 줄곧 있어 주의 귀한 은혜를 함께 했습니다. 서현가족은 아이들과 청년들 그리고 고단한 삶속에 살아가는 고려인들을 돕는 농활을 했고, 권사님과 형제는 머리를 곱게 만져주기도 했습니다. 떠나기 전날 땅 밟기를 하며 함께 누렸던 시간들이 생각납니다. 떠나던 날 우리는 공항에서 남서울은혜청년가족을 맞았습니다. 젊음으로 가득한 형제자매들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헌신으로 아이들과 청년들을 만져주던 그 사랑을 잊을 수 없습니다. 캄차카로 가는 날 내게 맡겼던 짐들을 자동차에 놓고 오는 바람에 난간하던 자매들이 생각납니다. 그 때 정말 미안했습니다.

7월 중순엔 미국남가주사랑가족과 함께 제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어두운 지역에서 수고하는 현지 사역지를 돌아보았습니다. 조국복음화를 위해 부단히 보내고 기도하는 뜨거운 열정을 가진 복음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마약과 알콜중독자들을 갱생시키는 일과 무엇보다도 북한을 위해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그들은 북의 형제들을 위해 돕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을 바라볼 뿐 아니라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일을 하시고 계셨습니다.

팔월 초엔 충만한 가족들이 그 이름대로 충만하게 왔습니다. 숙소문제와 거주등록문제로 염려가 되었지만 문제가 되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충만한 가족과 함께 했던 일들은 현지교회와 함께 문화센터에서 지역주민을 초청하여 복음을 전했던 일입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성령님은 만져주시고 진행해주셨습니다. 틈만 나면 책자를 들고 전하고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려고 열심을 보였던 충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가던 날 걱정이 되어 우리 자매 둘을 멀리 항만까지 보냈지만 공연한 염려였습니다.

팔월 중순엔 멀리 광주 서현가족이 왔습니다. 비행기로 하바롭스크를 경유하여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아침 일찍 블라디보스톡역에서 맞이하는 대원들의 모습은 붉은 용사들과 같았습니다. 용사들을 보냄에 있어 담임 회장님도 동행하는 용기는 더 전투적이었습니다.

이 가족들과 함께 가족공동체가 있는 크레모버를 방문했을 때는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이곳은 고려인들이 이주하여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현장입니다. 이분들도 중앙아시아에서 누렸던시간들은 남부럽지 않았는데 본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난한 나락으로 떨어져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삶은 고단하지만 그들은 주님이 계셔 외롭지 않았습니다. 오 게오르기 형제 부부는 고단한 삶속에서도 자신의 별채를 주를 위해 내놓았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루디아집에 있었던 가정공동체를 연상하게 합니다. 남가주사랑가족들이 다녀가면서 조금 도왔는데 그것으로 깨끗하게 단장하여 서현가족들이 방문했을 때 첫 모임을 갖고 흥분된 감사로 주를 높이던 그들의 모습은 지금도 뜨거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외에도 올 여름 저희 지역을 방문했던 분들은 로고스교수학회, 세계로가족(미국), 국제학교의 영어캠프가족, 사랑교수선교회가 다녀갔습니다. 올 여름은 한반도 여름의 뜨거움만큼 이곳에서도 복음의 열기로 보냈던 것 같습니다.

9-10월은 겨울을 대비해야 합니다. 올 겨울도 약 120톤의 석탄을 구입하기 위해 여러 탄광을 둘러보고 있습니다. 난방시설도 점검해야 하고, 갈라진 벽, 깨진 유리, 우물, 무엇보다 여름 기간 흩어졌던 성도들의 마음을 모으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지역 경제가 조금 나아지면서 돈을 좇아가기에 더욱 분주하지만 주님을 섬기는 일에는 그 열심만큼 미치지 못하여 마음이 아픕니다. 여유 있는 자들은 여름 내내 휴가로 바다에서 보내고 빈궁한 분들은 오늘의 만나 뿐 아니라 내일의 만나를 위해서도 걱정해야 하기에 마음은 장마당에 있습니다.

저희가 임시거주비자를 받은 지 1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1년 후에는 영주권(5년)을 신청할 자격이 주어집니다. 구비할 서류가 많고 대기자가 많아 어려움이 있는데 주의 인도하심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안정적인 사역과 자유로운 이동을 위해서는 필요한 실정입니다.

주께 아뢰어 주세요.

1. 여름사역의 열매들이 주의 곡간에 알곡으로 채워지도록
2. 여름 휴가기간 흩어졌던 성도들이 열심을 내도록
3. 구역모임 건실하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도록
4. 크레모버 가정공동체를 위로하시도록
5. 영주권 신청을 인도해주시도록
6. 가족 모두 성실히 주와 동행하고 공부(언어, 학교)에 열심 내도록

2007년 9월 연해주에서
송병주/김현숙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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