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윤/안현순 [필리핀]

샬롬으로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먼저 선교 사역에 대한 편지를 자주 못 드려 송구스럽다는 변명으로 메일을 시작합니다. 오늘은 저희가 머물고 있는 연희동 선교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잔디와 소나무’ 라는 북까페에서 오랫만에 편안하게 대하는 서울거리의 풍경을 감상하면서 메일을 드립니다.

올해로 제가 선교사로 나간 것이 만 24년을 넘겨 25년째 입니다. 그동안 필드 사역에 올인 하기 위해 최선을 하려고 노력하면서 바쁘고 분주한 삶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이젠 쉼과 회복의 기회를 갖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역하는 대학원과 선교부의 허락을 얻어 9년 만에 안식월이란 것을 신청하였습니다. 외부와의 연락을 최대한 자제하고 내면의 깊이를 가다듬기 위해 조용히 쉬면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서 그동안은 앞으로만 달려온 사역을 뒤돌아보기도 하면서 사역의 전반을 다시 챙겨 나갈 준비가 필요한 것 같아서입니다.

가족 이야기
요즘 제 마음이 다소 무겁습니다. 며칠 전에 사랑하는 큰 딸 믿음이를 한동대 복학을 위해 포항에 내려 보냈고, 어제는 둘째 보람이를 신촌역 근처 허름한 고시원의 쪽방으로 들여보냈습니다. 품안의 자식들 같고, 언제나 함께 있고 싶은 아이들이 떠나는 모습이 가슴에 아릿 아릿한 아픔으로 다가 오네요. 저는 아이들과 함께 생활한 날들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더 오래도록 함께 지내고 싶었는데… 아이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마음으로 가슴이 저며 오는 것 같습니다. 아내는 최근 건강이 좋지 않아서 몇 가지 정밀 검사를 했습니다. 오랜 사역과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심신이 지쳐 있는 상황인데 그래도 원래 부지런한 사람이어서 꾸준히 운동도 하고 음식도 주의하고 있습니다.

“땅아 땅아 하나님”
미얀마의 타지렉과 작은 개울 하나를 사이에 둔 접경에 태국 최북단 마을. 매싸이가 있습니다. 여기서 사역하는 아시아 비전 팀의 단기 선교사들을 만나기 위해 두 달 전에 그곳을 찾아 갔는데 저희 팀은 매싸이 사역을 마친 후 카렌 난민촌 맬라캠프에 가서 어린이 사역을 더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계시는 필리핀 사람 한 분이 카렌 난민촌에 가려는 우리 선교사들에게 “카렌에는 왜 가느냐?” 고 물으면서 “거긴 땅아 땅아 들이 모여 있는 곳” 이란 말을 했습니다. ‘땅아’ 는 필리핀 말로 ‘바보’라는 말인데 어떻게 해서 그분이 그런 말을 썼는지는 모르지만 상당히 충격적인 표현이었습니다. 선교의 기본은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고 섬기는 것인데 그분의 의식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렇지만 그분의 말이 전혀 틀린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선교는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바보 같고, 어리석은 짓일 수 있습니다. 십자가 사건은 인류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사건일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을 거역한 백성들을 위하여 주님께서 고난과 아픔을 감당하시면서까지 하나님과 깨어진 관계에 있는 분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요청하는 일은 어리석어 보이지만 가장 지혜로운 일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이 카렌에 들어가서 그들을 섬겨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의 아픔과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눠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올해 카렌 난민촌 사역에서 저희 팀들은 기대했던 50명을 훨씬 넘어 800명을 섬기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파푸아 뉴기니에서, 미국에서, 필리핀에서 온 ‘땅아 땅아의 단기 선교사’들은기대 이상의 은혜들을 경험하였습니다. 지난 3월 토론토 집회에 갔을 때 어느 성도 한분이 아시아의 어린이들을 위해 950 달러의 지정헌금을 한 적이 있는데 “어디에 그 헌금을 사용해야할까?” 고민을 하다가 카렌에 그 헌금을 보냈는데 800명이 넘는 어린아이들을 위해 값지게 사용이 되어서 저 역시 행복하였습니다.

선교지에서 배낭을 메고 여행을 하는 제가서울에 들어와 보니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들을 가지려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사실은 우리가 갖고 있는 것들 중 조금은 내려놓아도 그리 힘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내려놓을 때 갖게 되는 행복이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살이 찢기고 피가 터지는 고통을 당하신 주님. 바로 ‘땅아 땅아의 하나님’이 아니 계셨더라면 구속의 긍휼이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교회가 구하여야 할 지혜는 주님을 위해 더 낮아지고, 더내려놓고, 더 어리석어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2008년 – 아시아 비전 단기선교 프로젝트 이야기
올해 아시아 비전 프로젝트에는 필리핀. 한국. 중국. 미국. 영국. 파푸아 뉴기니등 여러 나라에서 온 젊은이들이 선교사로 여러 지역에 들어가 사역을 하였습니다. 특별히 태평양 한 가운데 자리한 파푸아 뉴기니에서 다섯 분의 젊은 리더들은 필드 지도자 훈련과 함께 라오스의 북부 지역에서 사역을 했습니다. 하루 7시간을 기도하는 자매를 비롯하여 모두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WHO (세계보건기구) 라오스 대표로 섬기고 있는 안동일 박사는 파푸아 뉴기니 사람들이 스스로 모금을 해서 선교에 나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팀을 위해 식사 대접을 해 주었습니다.

멀고도 지리한 여행길. 낡고 털털 거리는 버스. 땀내 나는 좁은 차량으로 이동을 하였고, 허름한 숙소에서 보잘 것 없는 음식을 들며 선교 지도력 개발 훈련을 할 때 더러는 장티푸스. 설사. 복통. 구토 등으로 고통들을 겪었지만 이 런 과정들을 통해 선교 지도력이 형성되어 간다고 생각합니다.필리핀 교회는 상당히 많은 이들이 선교사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영역에서의 도전이 필요한 나라가 되었고, 중국은 올해 30명 이상의 사역자들을 동남아시아 지역에 파송하였고 중앙아시아에는 6명의 선교사를 이번 9월 하순에 보내게 됩니다. 일본 오키나와에서도이 일에 열심을 품고이번 9월에 훈련을 겸하여 잘 준비된 치토세 선교사를 캄보디아에 파송하게 되며, 영국에서는 아시아 비전 프로젝트가 새롭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한국. 필리핀. 중국. 일본. 대만. 나갈랜드. 미국. 영국. 그리고 파푸아 뉴기니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게 될 많은 선교사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급격한 변화 앞에 서 있는 아시아에서 이제 우리는 선교사들을 위해 어떤 훈련을 제공해야 하는가? 어떻게 선교지에 맞는 효율적인 훈련을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떤 지역에서 어떤 사역을 어떻게 감당하게 할 것인가에 대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도시락과 펌푸 선교
선교현장의 고민은 피선교지 교회들이 주님을 향한 희생의 마음이 엷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선한 마음을 가지고 현지인들을 도와주는 것이 오히려 현지인들을 의존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 곱씹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오병이어의 볼품없는 도시락을 주님께 드렸던 작은 아이처럼 선교지의 연약한 교회들이 자기들이 갖고 있는 도시락을 내어 놓아야 기적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믿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의 도시락을 받으시고서야 수천을 먹이시고도 남는 기적의 역사를 실행하시는 주님. 오늘 선교현장에서는 가난한 크리스챤들이 자기들의 도시락이 무엇이든 그것을 주님께 드리는 희생적인 마음이 필요할 때입니다.

이번에 중국의 지하교회에서는 캄보디아에 선교사들을 내 보내면서 20,000 달러를 가져 왔습니다. 단기 선교사들이 먹고 자고 사역하는데 들어가는 최소한의 비용 가운데 상당한 금액을 어려운 여건의 중국 교회가 드린 것입니다. 중국 교회의 사정을 잘 아시는 선교사 한분이 “중국 위안화로 20000 원이 아니라, 정말 미국 달러로 20000 달러이냐?” 고 묻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 그리고 하나님으로 부터 위대한 것을 기대하라”는 도전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중국의 지하교회들은 비록 지금은 부족해 보이고 아주 엉성하고 서툴게 선교에 참여를 시작하지만 주님께서 그분들을 더욱 큰 은혜로 채워 주실 것을 믿음으로 바라봅니다. 중국 교회가 드리는 도시락을 통해 주님께서 기적과 구속의 역사를 성취하실 것입니다.

현지 교회가 주님을 위해 도시락을 내어 놓아야 한다면, 선교사들은 현지인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가를 찾아내고 그 부분을 그들 스스로 감당하도록 도와주는 선교. 즉 펌핑 선교를 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작은 양의 물을 부어 큰 물을 끌어 올리듯 현지인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하되 우리가 그들의 필요를 모두 채워 주기보다 그들 안에 있는 자원들을 길어 내는 사역이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지요.

감사함으로
선교 현장에서 만나는 다양한 간증들을 나누기에는 선교 편지는 언제나 제한을 갖고 있습니다. 나누지 못하는 많은 이야기들을 가슴으로 전달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시아에서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주님. 아시아의 젊은이들이 선교 현장에 나가 주님을 위해드리는 희생을 보며 함께 동역해 주시는 기도. 격려. 그리고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선교의 하나님께서 아시아를 변화 시켜 주실 것을 믿음으로 바라봅니다. 축복합니다!!!
<div align=right>2008년 9월 2일
김병윤 안현순 선교사 드림</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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