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 남은 쑥떡 인절미”
인도네시아로의 선교사역을 결정하고서 우리 부부는 평소 여가로 즐기던 모든 것이 이제 한국에서는 마지막인양 마음으로 심히 아쉬워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그 마지막 여가를 즐겼다. 이를테면 산으로 산나물이랑 더덕을 캐러 가는 것도 이제 이런 나들이도 마지막이니 열심히 그리고 아쉬운 마음 간절하게 다녀왔다. 모처럼 많이 채취한 나물들은 두고두고 그 맛을 잊지 않기 위하여 산에서 가져온 것들을 말려서 보관하였다.
그리고는 이것들을 잘 포장하여 인도네시아까지 들고 가서는 가끔 한국의 산하가 그리울 때면 아주 조금씩 꺼내어 나물로 무쳐 먹으면서 그 그리운 산하를 음미하며 향수를 달레리라고 말하곤 하였다. 실제로 우리는 마지막 산행, 산행이라기보다는 우리의 산행은 빈손으로 가서 그 풍성한 산채들을 마다리로 가득 가지고 오는 소득이 있는 산행을 하였다. 그 마지막 산행을 우리가 봄이면 늘 가는 대미산과 청옥산으로 갔었는데 올해는 어느 해보다도 묵직한 봇다리를 안고 돌아왔다. 아마도 “이것이 마지막이다.” 라고 우리가 생각하였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산채를 하였기 때문이리라. 대미산에서는 유난히도 산 7부 능선에 산 쑥이 많았다.
“여보, 산 쑥은 일반 쑥보다는 참 우리 몸에 좋은 것이라고 들었는데 어찌 이곳에 쑥이 이렇게도 많은지… 이참에 쑥떡이나 실컷 해먹고 갑시다.”
둘이는 무려 5시간을 산을 헤매며 쑥이랑 두릅, 그리고 취나물을 엄청 뜯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밤새 다듬으면서도 아마 아내는 힘든 줄 모르고 다듬었으리라 생각이 된다. 아내는 다듬으면서 이야기한다.
“이 산 쑥으로는 쑥 인절미를 만들어 당신이 먼저 인도네시아로 가 있는 동안 대용식으로 잡수시도록 하려고 해요.”
아내의 사랑이 담긴 쑥떡 인절미를 먹으며 버티면 더욱 쉽게 그곳에서 버티며 언어공부도하고 정착준비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고맙게 생각하였다. 함께 사역지로 들어가야 하는데 시집간 딸아이가 곧 둘째아이를 출산한다고 서울로 온다하니 아내가 산 간호를 하여 주어야 하리라 하여 남고 내가 먼저 사역지로 들어오게 되었는데 들어올 때 쑥떡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힘들었다. 무게가 나간다고 손으로 들고 비행기를 탔는데 들고 오면서 정말 먹고 산다는 것이 이렇게나 우리들에게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고 또한 이렇게 힘들구나 하는 생각도 하였다.
어찌 되었든지 간에 이 쑥떡 인절미는 이곳에서의 아침 식사대용으로 귀하게 쓰임을 받고는 이제 그 마지막 한토막이 남아 냉장고 속에 있는 그 한 토막을 바라보며 소감을 적는다.
이 나라 언어를 배우기 위해 다니는 언어학교에서는 돌아가며 간식을 준비하도록 정하였기에 나도 한 달에 두 번의 순번이 배당되었다. 그 간식 준비를 위하여서는 보통들 음료수와 그리고 비스킷 혹은 인도네시아 슈퍼에서 살 수 있는 빵을 준비한다. 나는 무엇을 준비할까 생각하는 중에 “맞아! 아내의 정성이 담긴 한국의 쑥떡을 내어 놓으면 히트를 칠거야 아마…” 생각하여 아침부터 전자렌지에다 냉동된 쑥떡 인절미를 해동시키느라 분주하였다. 그런데 아내가 토막토막 먹기 좋게 비닐 렙 봉투에 담아 분리 시켜 놓았는데 이것들을 녹이는 중에 녹은 떡과 비닐 수지가 들어붙어 진짜 떡이 되어 잘 떨어지지 않는 바람에 바쁜 아침시간에 얼마나 소동을 벌였는지 땀이 났다. 온갖 소동 우여곡절 끝에 콩고물을 잘 묻혀 마치 떡집 인절미처럼 만들어 아침에 들고 갈 수 있었다.
콩고물은 아내가 이것과 꼭 버물려 먹으라며 봉다리에 싸준 콩고물인데 사실 그동안 쑥떡을 끼니 대용식으로 먹으면서는 귀찮아서 그냥 맨 쑥떡만 먹었기에 콩고물은 그대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2교시 시간이 끝나 간식시간이 되어 모두들 늘 그렇듯이 설레는 마음으로 오늘의 간식이 차려진 장소로 모여들었다. 나는 내심 “아마 놀랄 거야. 그리고 모두들 맛있게 먹으리라.” 생각하며 그 주위를 빙빙 돌며 반응들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미국사람들이랑 인도네시아 선생들은 선뜻 이 떡을 집지 않았다. 한국 학생들은 이 귀한 쑥떡 인절미가 어디서 났느냐며 집어 먹는데 내가 서툰 인도네시아어로 만들어진 과정이랑 특히 이것은 나의 아내가 손수 만든 것이라고 설명을 하였어도 그들은 체면상 겨우 하나씩 먹어주는 식이었다. 한국 사람들도 내가 아침에 서툰 솜씨로 짧은 시간에 미처 들 녹이고, 특히 완전히 녹진하게 녹이지 않았기에 다소 맛없는 쑥떡이구나 하고 먹었으리라 짐작이 되어 몹시 서운하였다. 이것이 어떤 떡인데 하는 마음에서 나는 열심히 떡의 성분과 우리부부가 손수 2,000미터 가까이 되는 높은 산에서 뜯은 산 쑥으로 만든 참 몸에 좋은 떡이라고 설명을 하였지만 아마도 미국 선교사들은 무슨 야생 풀을 넣었다고 하는데 무슨 풀인지? 혹시 알레르기라도 일으키는 풀은 아닌지? 하고 생각 할 것이라고 짐작이 되었다. 그래도 한국 학생들이 맛있게 먹어주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하고 위안을 삼았는데 한편으로는 다시는 이 귀한 쑥떡을 이런 식으로 소모하지 않으리라고 다짐을 하였다.
그동안 한 번 더 이 귀한 아내의 쑥떡을 귀하게 써먹었다. 1학기 언어수업을 끝내고 한국 학생들끼리 종강파티 격으로 살라띠가에 있는 아주 우아한 호텔로 한 한국 교민 부인께서 초대를 하여 가서 점심을 잘 얻어먹고는 후식으로 쑥떡을 내 놓았는데 쑥떡을 보는 부인들이 한마디씩 한다. “ 우리 그 이는 쑥떡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데………” “우리 집 양반은 벌써부터 어디 쑥떡 파는데 없냐고 물었다 아입니꺼!” 그래서 그 쑥떡은 그 자리에서 먹지 않고 고스라니 두 집 바깥양반들께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렇게 귀하게 쓰임을 받으니 감사하고 나의 마음은 신이 났다.
한 개씩 아침마다, 그것도 매일아침이 아니라 아주 가끔 아끼며 특별한 아침에 먹어 오던 쑥떡이 오늘 아침으로 마지막 한 끼 꺼리 한 덩이를 남겨두고 다 먹었다. 유난히도 쑥의 향기가 짙은 특별한 쑥떡, 나도 생전 처음으로 먹어 본 깊은 산 쑥으로 만든 인절미, 내가 영양이 부실한 가운데 혼자서 이곳 인도네시아서 자취를 하면서도 피곤치 않게 버티게 한 그 비결인 쑥떡도 이제 마지막이다.
아침이면 신학생 중에서 한 학생이 내가 부탁하여 어쩔수 없이 귀찮지만 아침밥을 갖다 준다고 그릇에 밥만 한 그릇 담아 찾아온다. 마침 온 그때 나는 무언가 비닐에 싸여 있는 쑥떡과 범벅이 되어 찰싹 붙어버린 비닐과 분리하는 어려운 작업을 하며 먹고 있는 중이라 그들이 무어라 생각 했을까 걱정도 된다. “참 한국 사람들은 희한 하구나. 아침마다 무언가 비닐에 쌓여져 있는 덩어리를 전자레인지에 넣었다가는 그것을 꺼내어 열심히 비닐껍질을 벗겨 가며 먹는데 무언지 모르겠어. 그걸 먹어서인지 저 오랑꼬레아(한국사람) Pak Moon은 늘 얼굴에 건강 색을 유지하나봐!” 라고 그들은 생각 할 것이라 생각한다.
마지막 한 덩이의 쑥떡을 보며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단순한 쑥떡이 아니라 혼자서 끼니를 해결하여야 할 남편을 생각하는 정성과 걱정, 그리고 기도가 담긴 특별한 떡을 만들어 준 아내를 인하여 주님께 감사드린다. 그러나 어찌할 수 없는 것이 나를 밀쳐 한 덩이 뗑그라니 남은 쑥떡을 쳐다보며 이 저녁은 더욱 마음이 심란하다. 그 쑥떡을 다 먹고 나니 모든 것이 다 소진 된 것 같은 감이 들고 반찬도 식량도 다 떨어진 것같이 느껴져 허전하고 쓸쓸하게 저녁을 맞이하였다. 실제로 반찬도 다 먹었고 교민 집사님이 가져다주신 멸치 복음이랑 상치도 다 먹었다. “이제 뭐 먹고사나?” 하는 생각으로 한참을 허탈하게 앉아 있다가 그래도 마음을 가다듬고서 벌떡 일어나 쌀을 씻고 감자를 벗기고, 양파와 파를 다듬고서는 멸치 세 마리와 된장을 넣고 한 냄비 찌개를 만들었다. 그리고 밥을 두 그릇하여 한 그릇은 내일 아침을 위하여 비축하고 한 그릇은 상추쌈과 찌개로 배부르고 맛있게 먹고 이 글을 쓴다.
허전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 떡은 아주 특별한 떡, 아주 귀한 떡, 그러나 외국인들에게는 뭔가 꺼림직 한 떡, 하지만 언어학교를 다니는 교민 집사님들은 웬 쑥 떡이냐고 놀라며 맛있게 잡수신 떡, 이 떡은 바로 내가 미국 선교사들에게 말한 그대로
“로띠 이뚜, 이스뜨리 사야 머마삭 선디리 등안 꼬레아 바구스 룸뿟 구눙 운뚝 사야, 주가 로띠 이뚜 로띠 스뻬시알.” ( 이 떡은 나의 아내가 직접 손수 산에서 채취한 좋은 풀로 저를 위하여 만든 떡입니다. 그래서 이 떡은 특별한 떡입니다.)
떡은 다 먹고 없지만 이제 떡에 대하여는 다 알려졌고 그 쑥 향기는 여운으로 내 입에 남아있어 언제나 향수처럼 나를 아리게 한다. 가끔 교실에서 어제의 나의 생활과 체험을 발표하는 시간에 “로띠 스뻬시알 …” 운운 하면서 ‘어제도 아내를 생각하며 쑥떡으로 아침식사를 맛있게 하였다.’며 이야기를 풀어 가면 미국서 온 젊은 선교사 Joel은 활짝 웃으며 나를 쳐다보고는 “바구스! 바구스 스깔리!”(최고! 최고!) 하며 엄지손가락을 바로 세운다.
정말 이 쑥떡 인절미는 바구스 스깔리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