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집시촌의 가을 소식입니다.
그 동안도 평안하시시요?
저희는 건강히 잘 있습니다. 9월 <선교편지>에 보고드린대로 헝가리 북부 미쉬콜츠(Miskolc)로 이사하여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헝가리에 공해물질인 알루미늄 슬러지가 배출되어 온 세계가 걱정했는데 저희는 다행히 멀리 떨어져있어서 괜찮습니다. 저희 부모형제들 모두 평안하고, 또 저희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잘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여러분들의 기도 덕분입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미쉬콜츠로 이사와서 이곳 헝가리 교회 담임이신 사무엘 목사님의 도움으로 이 도시 주변의 로마니(집시)촌을 둘러보았습니다. 미쉬콜츠에만 17만명의 인구가 사는데 그 중 20% 이상인 35,000명 넘은 로마니(집시)족들이 있다고 합니다. 미쉬콜츠 주변은 물론이요, 조금만 더 나아가도 지천이 저희의 선교대상인 로마니(집시)촌들입니다. 이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것은 이들도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는 똑같이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인데 이들을 위한 교회, 이들을 위한 사역자가 거의 전무하다는 사실입니다. 헝가리교회야 마을마다 교파별로 몇 개씩 있지만 로마니(집시)족들은 갈 수 없습니다. 아니 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가지 못하지요. 그곳에 가면 헝가리인들이 너무 싫어하고, 집시들이 교회에 오면 교인들이 떠나기에 목사님들도 반기지 않구요. 로마니족 어른들이야 그렇다고 해도 집시 아이들을 볼 때면 대물림으로 이런 고통과 차별을 겪고 살아야 할 것을 생각하니 아이들이 얼마나 불쌍하고 마음 아픈지 모릅니다. 3,40년 전 우리나라 대도시의 어느 빈민촌 고삿같은 골목길. 불규칙하게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붙여지은 집들 사이로 시궁내음 물씬 나는 하수가 흙길 위로 흐르고 그 냄새나 자기들 몸에서 나는 냄새나 별 차이 없어서인지 그 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뛰노는 집시 아이들. 그 아이들의 눈빛, 몸짓, 까르르 웃는 웃음소리는 한국이나 미국의 우리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똑같이 하늘로 하늘로 퍼져서 천상에 닿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 같은데…
저희가 이곳에 온 이후 참 좋은 헝가리 목사님과 자매님들을 만났습니다. 오래 전부터 이것을 놓고 기도해 왔고, 많은 분들이 기도해 주셨는데 덕분에 하나님께서 이런 분들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저희가 집시선교를 위해서 미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이들이 감동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온 다음 얼마 안되어 마르다 자매와 이링까 자매가 집시지역에서 집시아이들을 위한 성경공부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저희는 아직 언어가 부족해서 직접 가르치지는 못하지만 함께 하면서 돕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링까 자매님 집에서 매주 토요일에 정기적으로 하다가 이링까 자매님 어머님 병환으로 그 집을 사용할 수 없어서 현재는 장소가 허락하는대로 비정기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토요일 아홉 시 경에 마르다 자매님과 함께 집시촌 지역에 가서 골목 골목을 다니며 아이들을 모읍니다. 아이들이야 토요일에 학교도 없고 별로 놀거리도 없기 때문에 이 골목 저 골목에 아주 많습니다. 그렇지만 아직은 성경공부와 함께 콜라 한 잔과 과자 몇 개가 전부인 그 모임에 잘 안오려고 합니다. 로마니족들은 집집마다 아이들을 많이 낳기에 집시촌에는 강아지만큼이나 아이들이 많습니다. 아이들은 정부에서 자녀양육비를 받기 위해서, 강아지는 가져갈 것도 없는 집을 지키라고 그렇게 많이 키운답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길은 복음 밖에 없는데 아이들을 위한 성경공부가 생겨서 감사할 뿐입니다.
지난 달에는 헝가리에서 8년째 집시선교를 하고 있는 C선교사님과 함께 루마니아 집시촌을 방문했습니다. 루마니아의 이 집시촌은 저희가 사는 도시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 정도로 가깝습니다. 이곳의 집시촌은 저희가 사는 미쉬콜츠보다 환경이 훨씬 더 열악하고 가난했습니다. 마을에 있는 모든 집들이 사진에 보시는 집처럼 이런 곳에 사람이 사나 싶을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놀랍게도 그 안에 아이들과 강아지들이 뒹굴고 사람이 살더라구요. 제가 일부러 제일 안좋은 집과 불쌍해 보이는 아이들 사진만 올린 게 아닙니다. 이보다 더 비참하고 가난한 모습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 사진을 올리면서 혹시라도 로마니들에 대해 너무 부정적인 사진이 아닌가 싶어서 많이 생각하고 기도한 후에 올리기로 결정하고 편집을 했습니다.
숨기고 가린다고 있는 것이 없어질 것도 아니고 차라리 현실 그대로를 보여주고 얘기할 때에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도하며, 함께 이들을 위해서 주님의 마음으로 선교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함께 간 C선교사님 얘기로는 동구권 중에서도 그나마 헝가리 집시들은 루마니아보다 좀 낫고, 루마니아에서 더 들어간 우크라이나 집시촌에 가보면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저희가 방문한 루마니아 집시촌은 C선교사님이 오래 전부터 후원하며 사역하는 곳으로 그 지역 시장이며 침례교 목사님이신 어느 부부와 서유럽 어느 단체의 후원으로 선교센터를 짓고 매일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로마니 아이들에게 한 끼 식사를 해주고, 방과후 학교(after school)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빵과 복음을 통한 선교가 아주 잘 이루어지고 있어서 많이 배웠습니다. 사진에 나오는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이라 집에 있고, 좀 더 큰 아이들은 학교를 마친 후 선교센터에서 방과후 학교를 하고 있습니다.
저희 부부가 미쉬콜츠로 이사하던 날 알에서 깨어났던 비둘기 새끼 두 마리가 이제는 훌쩍 자라서 어미 아비의 도움 없이 제 먹을 것을 찾아 이리 저리 날아다닙니다. 우리 고국 어느 마을처럼 가난한 집시 마을에도 가을은 여전히 코스모스와 들국화로 피어나고, 탐스러운 포도송이와 빨간 열매로 그 결실을 창조주께 바치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비록 지금 선교 사역 초창기로 눈에 보이는 것, 손에 잡히는 것이 별로 없을지라도 언젠가는 저 푸르고 푸른 집시 아이들의 눈빛 속에 아름다운 꿈과 희망이 빛나게 자라서 우리 집 창가에서 태어난 비둘기 새끼들처럼 창공을 퍼덕이며 주님을 노래하고, 아무리 가난한 마을이라도 가을이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저 꽃들처럼 아름답게 피어나서 주님의 영광을 높이며 튼실한 결실로 세상에 주님의 은총을 증거할 날이 올 줄 믿습니다.
집시촌이라고 해서, 집시아이들이라고 해서, 집시 부모들이라고 해서 하나도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단지 500여년 전에 조상들이 남의 땅, 남의 나라에 유랑해 온 것 때문에 선택의 여지없이 이곳에 태어나서 천대받고 멸시받으며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는 것 때문에 우리와 조금 다르게 사는 것 뿐입니다. 집시촌에도 여전히 개가 짖고, 꽃이 피며, 열매가 결실하고, 비록 남루한 옷에 시궁냄새 나는 골목길이지만 저희가 가져간 사탕 한 알에 행복해 하는 해맑고 고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하늘을 맑게 합니다.
그곳도 저녁이면 가난한 굴뜩이지만 연기가 피어오르고, 다른 때보다 일찍 떠오른 늦가을 저녁 달빛을 받으며 짤랑짤랑 말방울 소리에 맞추어 처자가 기다리는 초라하지만 따뜻한 집으로 돌아오는 가장들의 한가한 귀가가 있었습니다.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는 이곳 미쉬콜츠를 중심으로 수없이 많은 로마니(집시)족들을 대상으로 선교를 합니다.
아직은 시작이라 급하게 하지 않고 언어훈련과 문화적응을 우선으로 하며, 어린이 사역에 관심을 갖고 이 사역에 헌신된 헝가리인 동역자들을 찾고 있습니다. 저희를 통해서 여러 집시촌에 어린이 사역이 확장되고, 이 사역을 위한 좋은 프로그램과 헌신된 동역자들, 맘껏 사역할 수 있는 공간, 더 나아가서는 집시촌에 이분들이 편하게 예배 드릴 수 있는 교회 등이 생길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또한 동유럽 전체에 가는 곳마다 숱하게 많은 집시족 영혼 구원을 위하여 부름을 받은 많은 선교사님들이 이곳에 올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런 것들을 위해서 중보기도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주의 평화!
헝가리 집시선교사 박완주 박미영(한울 솔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