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주/김현숙 [러시아] 2010.11.16

 

 연해주의 파란하늘과 형형색색으로 물든 산하의 낙엽들도 고국의 산천과 별 다르지 않다 여겼는데, 시샘이라도 하는 듯 시베리아의 불청객에게 다 벗어주고 가버렸습니다. 푸른 초원을 입맛 따라 누볐던 양떼들도 싱싱한 풀냄새 그리워 이리저리 뒤져 보지만 헛수고 일뿐, 이젠 주인이 주는 건초만 먹어야 할 때가 되었답니다.

철 굴뚝에서 뿜어대는 매캐한 연기와 함께 깊은 겨울의 나락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처마에 매달린 고드름, 보기만 해도 을씨년스럽지만 아이들은 손발이 시린 줄 모르고 얼음판을 지쳐댑니다.

 

 

지난 구월 초에 전도훈련을 받고 함께 마을로 나갔습니다. 처음엔 주저함이 있었지만 성령께서 담대함을 주셨고 사람들을 붙여 주어 구원받기로 예정된 자들이 주께 나아와 지금까지 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전도는 수혈과 같은 것 같습니다. 전도하지 않으면 교회는 정체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요즈음에 러시아 정부는 국민들에게 종교를 갖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교회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구월이 다가는 마지막 주일에 모처럼 야유예배로 들에 나갔습니다. 울긋불긋 형형색색으로 물든 단풍들처럼 우리들의 모습도 좋아보였습니다. 버스를 타고 들에 나가는 기쁨은 어린이나 어른 모두 즐거운 듯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동안 살기에 바빠 좀처럼 여유를 가질 수 없었지만 이날만큼은 즐겼습니다. 은퇴 후 선교지에서 삶을 보내기 위해 오신 윤종호 장로님께서 성도들에게 바비큐를 대접하여 분위기는 한층 고조되었지요. 커다란 호수, 드넓게 펼쳐진 푸른 초원에서 하루는 마치 갈릴리 마을에 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지난여름 겨울 김장 세미나를 하자며 냉장고에 보관해 두었던 몇 년 묵은 한국배추 씨를 뿌렸습니다. 발아가 얼마나 될까 걱정을 하며 물을 주고 정성을 다 했을 때 예상 외로 모두 발아했고 탐스럽게 자라주었습니다. 조그마한 씨앗에 담긴 생명도 주어진 역할을 하려고 오랜 세월을 기다린 걸 생각해보면 우리의 생명에 대한 주님의 관심을 묵상하니 은혜가 되었습니다. 한국의 배추 값이 천정부지로 뛰어 오를 때, 우리는 맛있는 김치를 먹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농사란 그렇게 쉽지 않았습니다. 병해충이 발생하여 겨우 김장 세미나 할 분량만 거둘 수 있었습니다. 어렵게 시작된 세미나 내내 모두 진지하였고 재미있어 하였습니다. 김장을 끝내고 수육을 갓 담근 김치로 싸먹는 맛, 배추 된장국 이국에서 먹는 맛은 더 깊어 보여 잊을 수 없었습니다. 이젠 김치가 세계화되어 현지인들도 한번 맛을 보면 계속 먹고 싶다고들 합니다. 어떤 이들은 김치는 마약과 같아 한 번 맛을 보고 나면 자꾸 그리워 진다나요. 고려인들에게는 한국의 김치 담그는 전통을 계승하고 러시아 현지인들은 김치를 통해 한국의 문화를 체험하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지난 시월에 연해주장로회 공의회가 있었습니다. 이곳의 장로교단은 한국선교사들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본 공의회 내에는 연합신학교가 있으며 3개 시찰회, 회원은 25명입니다. 현지인들도 지도자로 여럿 배출되어 교회들이 뿌리를 내려가고 있습니다. 기틀을 마련해 나가는 때에 제가 공의회 의장을 맡아 2년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아직 선교지의 경험도 부족한데 조금은 걱정이 됩니다. 비교적 이곳의 선교 역사가 짧지만 러시아 연해주에 장로교회의 건전한 교단이 자리매김 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또 제가 속해 있는 선교회(GMP) 지부장, 농업사역까지 맡아 많은 역할이 주어져 책임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지혜와 힘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다행이 저와 아내는 건강하며 두 딸들도 어려움 없이 잘 지내고 있어 감사합니다. 큰 딸 세희는 졸업 작품을 끝내고 취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은이는 블라디보스톡 극동대학에 입학하였고 방을 얻어 친구와 지내고 있는데 주말이면 저희 사역 현장으로 와 돕고 있습니다. 도로에 공사 현장이 많아 약 3시간이나 소요되어 힘들어 합니다. 안 왔으면 하지만 교회에서 맡고 있는 역할이 크고 당장에 그 자리를 보충해 줄 사람이 없는 형편입니다. 저희 가족 모두가 주님의 쓰임에 잘 사용되어지도록 기도해주십시오.

 

 

러시아 연해주에서

 송병주/김현숙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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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섬김, 그들의 교회, 하나님의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