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태/육광숙 [서부아프리카] 2011.03.02

시몬 다솜이네 가족이 세네갈에서 전하는 일곱 번째 소식

………더운 날씨 속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축구하는 아이들이 안쓰러워서 수박 한 덩어리를 사주었는데, 제가 사준 수박을 먹고 나서 그 수박 껍질을 나를 향해 던지는 아이들. 집 앞 공터에서 노는 아이들에게 콜라를 사 주었는데, 그 콜라를 마시고서 다음날 우리집 마당에 뱀을 던져 넣는 아이들. 500년 동안 백인들에게 식민통치를 받았기 때문에 백인들에겐 함부로 못하면서, 동양인은 자신들보다 더 열등한 인종이라고 생각하기에 내 면전에서 나를 노골적으로 조롱하고 멸시하는 세네갈 사람들. 거의 매일 나를 미치게 만드는 이들의 황당하고 무례한 행동들.

이젠 이 땅에서 살기가 싫다. 이런 세네갈 사람들이 싫다. 그런데 세네갈 사람들을 예수님처럼 사랑하고 섬기겠다고 선교사로 왔으면서 이들을 사랑하고 용서하기는커녕, 오히려 같이 욕하고 싸우는 내 자신은 더 싫다.

언어적, 지리적, 인종적, 문화적 상황을 본다면, 서부 아프리카는 동양인 선교사에게는 맞지 않는 선교지인 것 같다. 이곳은 유럽이나 미국 그리고 브라질 백인 선교사들이 사역하면 훨씬 효과적으로 사역할 수 있는 선교지가 아닐까?……..

……..오늘도 내 자신에게 질문을 해 본다. ‘나 선교사 맞아?’ 내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커질수록, 사도 바울을 점점 더 존경하게 된다. 단지 복음 때문에 수차례 맞아 죽을 뻔했고,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폭풍 속에서 사선을 넘나들었으며, 비그리스도인에게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에게 조차도 온갖 모욕과 모함을 받았던 사도 바울.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망하거나 포기하기는커녕, 오히려 스페인까지 선교여행을 떠나려고 계획했던 그의 열정 앞에 나는 할 말이 없다. 세네갈에서 겪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 이미 다 알게 된 지금 한국에 들어간다면, 나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자신이 없다……….

……..브라질 선교사에게 물어보았다. “세네갈 사람들이 브라질 백인들도 무시합니까?” ‘아니오’라는 대답이 나오리라 확신하면서 한 질문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의 대답은 ‘예’였다. 너무 의아해서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는 나에게 크게 3가지 이유가 있다고 했다. 그 중에 가장 큰 이유는 500년 전에 ‘생루이’를 가장 먼저 식민통치했던 사람들이 바로 ‘포르투칼인’들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실 브라질 백인은 아프리카 사람들을 식민지 노예로 삼았던 바로 그 포르투칼의 후예들이다. 그래서 세네갈 사람들은 브라질 백인을 단순히 무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증오심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네갈 사람들이 그러한 증오심을 브라질 백인들에게만 노골적으로 표현했을 뿐, 사실 그들의 마음속에는 다른 백인들을 향해서도 동일한 증오심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 그 심정이 이해간다. 35년간 일제식민통치를 받았던 우리민족에게도 아직까지 반일감정이 남아있는데, 무려 500년동안 식민통치를 받았고 사실상 지금도 백인들의 착취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품고 있는 증오심은 당연해 보인다. 예수님의 사랑을 전해야 할 선교사에게 있어서, 과거 500년의 아프리카 식민지 역사와 노예무역의 역사는 백인선교사에게는 가장 큰 장애물로 아직 남아 있는 듯 보인다.

지금까지 언어적으로, 지리적으로, 인종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대우받으면서 사역하는 백인선교사들을 부러워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세네갈 사람들의 내면을 알게 된 이후, 그 부러움은 말라버리고 이젠 그 자리에 새로운 소망이 돋아났다. 바울처럼 복음 하나 때문에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기뻐하고 자족할 수만 있다면, 내가 동양인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이 땅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도움이 될 듯 싶다. 더욱이 1000번에 가까운 침략과 일제 식민지를 경험했던 한국인이기에 세네갈 사람들과 더 깊이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하나님! 세네갈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서 전하기 전에, 먼저 예수님처럼 저도 세네갈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도록 저의 강퍅한 마음을 깨뜨려 주옵소서. 가난한 마음, 상한 심령을 주옵소서’……..

……..아직은 알 수 없는, 아니 어쩌면 내가 죽는 날까지도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이 이미 이 땅에서 시작된 것은 아닐까? 나를 이 땅에 심으신 것도 그 큰 경륜 가운데, 아주 작은 한 조각이 아닐까?

예수님께서 언제 재림하실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마지막 날을 준비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이 소식을 세네갈 강 가에 사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단 한 번도 들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다. ‘생루이’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1000km가 넘는 세네갈 강을 따라 수천 개의 마을이 있는데, 대부분의 마을은 지금까지 선교사의 발길이 단 한 번도 닿지 못했던 곳이다.

세상에는 많은 불평등이 있다. 부자와 가난한자. 유능한 자와 무능한 자. 잘생긴 자와 못생긴 자. 그런데 이러한 불평들은 길어야 80년 정도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렇지만 복음의 불평등은 천년 이천년이 아니라, 시간의 끝이 존재하지 않는 영원한 생명에 영향을 미친다. 인류에게 가장 큰 고통을 가져다 준, 이 복음의 불평등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이 땅으로 불러주셨다.

‘나의 비전, 나의 계획, 나의 달란트, 나의 가정 모두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다시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하나님! 내 뜻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2011년 2월 9일 서부아프리카 세네갈에서 김재태/육광숙/시몬/다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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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섬김, 그들의 교회, 하나님의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