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윤/정인혜 [알바니아] 2011.03.11

사랑하는 분들께,

3월이 시작되는 첫 날을 맞아 설레고 반가운 마음으로 소식을 전합니다. 한국은 유래 없는 혹한으로 무척 힘든 겨울을 보내고 있다는 소식을 여러 번 들었는데, 겨우내 건강하게 지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이곳 알바니아는 며칠씩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 여러 차례 있기는 했지만, 비교적 따뜻하고, 예년에 비해 비도 많이 내리지 않아 겨울을 지내기에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아울러 지난번에 이 나라에서 일어난 폭력 시위로 인해 이메일로 긴급히 기도 쪽지를 보내드렸었는데, 다행히 그 후로 정국이 안정을 찾고 있습니다. 알바니아를 위해 염려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팔커마을 이야기

오늘은 지난 9월에 첫 방문을 시작으로 매주 토요일마다 방문해 오고 있는 팔커(Farke) 마을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기도를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팔커는 수도인 티라나 동쪽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다이티산의 오른쪽 기슭에 위치한 작은 시골 마을입니다. 마을 중앙에 헬리콥터가 뜨고 내리는 공군기지가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여느 시골 마을처럼 소와 양을 먹이고, 텃밭을 일구고 사는 평온한 마을입니다. 혹 가족 중에 티라나 시내로 일을 하러 다니거나, 그리스 등 주변나라에 가서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기도 하는데, 옛날 우리나라 시골과 같이 친척들이 주변에 함께 모여 살며, 어린 아이들까지 스스로 무슬림이라고 소개하는, 복음에 대해서는 다소 폐쇄적인 마을입니다.

이곳에 1학년부터 12학년까지 다니는 학교가 있는데,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누어 주변 마을에서 오는 아이들까지 대략 1,000명 정도의 학생들이 다닌다고 합니다. 마을의 크기나 학교의 시설에 비해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많아 좀 놀랐는데, 주변 마을들 중에서 중심이 되는 지역인 것 같아 그곳을 꾸준히 방문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몇 달간 매주 토요일마다 자녀들을 데리고 학교 앞 공터에서 만나는 아이들과 축구나 베드민턴, 농구 등을 하며 친구가 되는 일을 해왔는데, 그동안 적어온 팔커 방문일지 중 일부를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 어느 비오는 날

12월 4일. 6주 연속 비가 안 오기를 기대했는데, 기적(일주일 내내 비가 오다가도 토요일이면 비가 개는)은 5주를 마지막으로 끝났다. ‘비가 오는데 누가 나올까…?’ 그래도 아이들과 약속한 시간에 가서 기도만이라도 하고 오자는 맘으로 차를 몰았다. 오늘은 학교 앞 문방구도 문을 닫았다. 학교 앞 공터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누군가가 교문을 타넘고 우리에게로 뛰어왔다. 띠띠다. 비 맞은 강아지처럼 우산도 없이 비에 옷이 다 젖어 있다. 우리를 기다렸냐고 물음에 “Po(예)” 하고 대답하는 얼굴에 해 맑은 웃음이 담겨있었다. 비를 맞으며 우리를 기다렸다는 사실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 뒤를 이어 플라크림, 베코도 교문을 넘어 달려왔다.

오늘은 축구를 못하는 대신 그 아이들이 자주 간다는 동네 PC방을 함께 둘러보았다. 비행장 바로 앞에 있어서 그런지 몇몇 군인들이 뿜어내는 담배연기가 좁은 공간 안에 자욱했다. 게다가 성인용 DVD를 빌려주고 있어 아이들에게 좋지 못한 환경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왠불편했다. 아이들은 틈만나면 그곳에서 페이스북을 한다고 한다. 우리가 이 아이들을 위해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된다.

* 아이들의 친구가 된다는 것-아빠노릇 하기

12월 11일. 지난 주에 이어 이번 주도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고민을 했다. 환영보다는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몇몇 어른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역보다는 이들과 먼저 관계를 쌓고 친구가 되는 것이 더 우선적인 일이라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어린 아이들과 노닥거리기만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마을을 찾았다. 오늘도 제지, 띠띠, 플라크림, 아프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아이들과 놀며 이야기 하다가 제지의 아버지가 그리스에 가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2살 제지, 10살의 띠띠 두 아들을 두고… 이 아이들은 아빠가 얼마나 그리울까…? 아이들이 토요일마다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놀이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 시간으로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 팔커의 첫 크리스마스

12월 25일. 2010년 크리스마스, 알바니아는 비가 내렸다. 오늘은 팔커 아이들을 위해 조촐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기로 한 날이다. 팔커를 정기적으로 방문한지 두 달이 되는 시점이기도 해서 올 해가 가기 전에 뭔가 의미 있는 모임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약속한 시간이 훌쩍 넘어갔지만, 아이들이 10명 남짓밖에는 모이지 않았다. 여러 아이들이 친척들의 결혼식에 갔다고 한다. 준비해간 게임(과자 따먹기 등)을 한 뒤,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소개하는 짧은 메시지를 전하고 찬양을 부르는데, 학교에서 성탄절에 대해 배웠다며 듣지 않는 아이, 왠지 거북한 표정을 짓는 아이, 찬양을 장난스럽게 따라 부르는 아이들로 인해 분위기가 어수선하여 진땀이 났다.

그래도 이곳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준비하며 2000년 전의 크리스마스와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려고 하지만, 비와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적절한 장소를 찾기가 어려웠고(결국은 학교 앞 문방구를 빌렸다), 예수님의 파티에 찾아온 손님들도 양들을 키우는 마을 아이들 11명이 전부였으니…. 어쩌면 지난 몇 백 년 동안 오스만 터키의 통치와 공산주의, 그리고 민주화로 인한 어수선한 시대를 보내면서 이 마을에는 크리스마스 파티가 한 번도 없었는지 모른다. 비록 아이들은 시끄럽고, 어른들은 경계의 눈빛으로 지켜보았지만, 예수님의 나심을 알려주고, 함께 찬양하고, 음식을 나누어 먹은 오늘. 참 아름다운 팔커의 크리스마스였다. ‘우리와 함께 계신 그의 이름 임마누엘…’

* 또니네 가정 방문

1월 15일. 오늘은 레디, 클레비, 띠띠, 플라크림, 아프리, 셀림, 또니, 안젤라, 플로리, 페트리티 등의 아이들이 함께 했다. 매주 토요일 이 시간 즈음에 이 마을 이장을 지냈던 문방구 주인 브야리의 집에서 영어 과외 모임이 있다. 오늘은 그 앞에서 아들을 수업에 들여보내고 기다리는 한 아버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스에서 일을 하는 그는 3일 전에 알바니아에 가족을 보기 위해 왔고, 보름 후에는 다시 그리스로 간다고 한다. 아들에게 영어교육을 시키기 위해 이웃마을에서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자녀들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일하는 그 아버지의 부정(父情)이 깊이 느껴졌다.

아이들과 놀이를 마치고 근처에 레디의 친척이 한다는 지동차 시트 수리 가게에 들렀다. 자동차의 실내 천정이 뜯어져 천 갈이를 맡길 생각이었다. 이 틈에 아내는 가게 옆에 붙어있는 토니네 집으로 들어가 토니의 할머니, 숙모와 인사를 나누었다. 할머니는 볕이 잘 드는 마당으로 의자를 내오라고 하시더니 초콜릿과 과자로 낯선 손님을 대접하셨다. 와! 오늘은 팔커에서 처음으로 한 가정의 문을 열고 방문한 역사적인 날이었다. 하나님께서 이 가정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소망하며 마음으로 축복의 기도를 드렸다. 다음번에는 또니의 부모와도 교제할 수 있기를, 또한 이처럼 문을 열어주는 또 다른 집을 주시기를 기도드린다.

– 팔커 방문 일지에서 –

* 기도해 주세요

아이들과 조금 친해지면서 요즘은 말을 잘 듣지 않아 때때로 마음이 어려워 질 때가 있습니다. 저희 자녀들을 데리고 매주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가끔 힘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희는 팔커 마을 아이들을 통해서 조금씩 주님의 마음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봄을 맞아 씨를 뿌리기 위해 밭을 갈고 준비하는 농부들의 모습을 보면서, 또 팔커의 아이들을 생각하다가 ‘아, 지금이 정말 기도가 필요한 때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여러분께 이 편지를 띄웁니다. 주님이 이 일의 주인이신 것을 늘 기억하며, 저희들이 아이들과 사랑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맺어갈 수 있도록, 주님의 말씀이 앞으로 이 아이들의 마음에 온전히 심겨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그럼, 다음 소식 전할 때까지 평안하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2011. 3. 1

티라나에서, 나무가족(이동윤/정인혜/형석/형민/형범) 드림

* 기도 제목

1. 날마다 주님과 만나는 시간이 깊고 풍성하도록

2. 팔커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참된 친구관계로 우정을 키워가도록

– 팔커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살펴, 이 지역의 필요를 잘 발견하고 섬길 수 있도록

– 말씀을 나누고 양육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도록

3. 주변의 이웃들, 만나는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고 복음을 나눌 수 있도록

4. 알바니아 사람들의 세계관에 영향을 주고 있는 무슬림, 무신론 등에 대해 깊이 연구하도록

5 쉬프레사팀이 여러 가지 변화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교회를 잘 세워갈 수 있도록

6. 얼마 전 폐암 판정을 받으신 이 선교사의 아버님이 건강과 마음의 평안을 잘 유지하시도록

About the Author

우리의 섬김, 그들의 교회, 하나님의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