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분들께,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한국에서 이맘때쯤이면 아카시아 꽃향기가 따뜻한 공기 속에 은은히 퍼지면서 한껏 마음을 부풀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알바니아에서 세 번째 봄을 보내면서 아름다운 고향의 계절을 멀리서나마 그려보게 되는군요. 지난번 편지에서는 저희 가정이 방문하고 있는 팔커 마을의 이야기와 함께 기도부탁을 드렸었는데, 감사하게도 그 후 주님께서 몇 가지 일들을 통해 마을 아이들과 더 깊이 사귈 수 있도록 도와주신 것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편지에서는 그 일들에 대해 간략히 나누고자 합니다.
팔커 아이들의 티라나 나들이
알바니아에서는 해마다 3월 14일을 ‘디따 에 베러스(Dita e veres)’라고 해서 춥고 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되는 것을 축하하는 축제를 벌입니다. 팔커에서도 중학생 이상 되는 아이들이 매년 축제를 구경하기 위해 무리를 지어 시내에 나온다고 하길래, 함께 만나 같이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으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습니다. 팔커가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나서 그런지 아이들이 왠지 보통 때보다 더 점잖게 행동하는 듯 했지만, 축제로 인해 들떠있는 기분은 아이들이나 저희들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축제의 행사 중 하나로 헬리콥터 비행 쇼가 시작되자 저희가 동시에 “팔커 헬리콥터다!” 하고 환호했습니다. 모든 헬리콥터는 팔커에 있는 공군기지에서 뜨고 내리기 때문이지요. 팔커를 방문할 때마다 저희가 낯선 이방인이라 느껴졌었는데, 이 날 나들이를 통해 아이들과 저희들 사이에 뭔가 중요한 공통분모가 생긴 것 같아 무척 기뻤습니다.
아이들에게 콜라를 한 병씩 사주고 저희는 꼬맹이 동생들이 기다리고 있을 팔커 마을로 발걸음을 향했습니다. 가정 형편이 좋은 아이들은 부모님을 따라 시내 나들이를 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무료하게 지낼 거라 생각이 되어 오후에 찾아가기로 약속한 것입니다. 4명의 아이들이 저희를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그리고는 허름한 종이 상자에 담긴 미모자 꽃 한 아름을 선물이라며 건네주었습니다. 아이들의 소박한 감사의 마음이 전해져 가슴이 찡했습니다. 아이들에게 게임으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알바니아 말로 번역해서 트런다필리 카 첼룰: 장미꽃이 피었습니다)를 가르쳐 주었는데, 얼마나 재미있어 하던지요! 그 날 이후부터 ‘트런다필리 카 첼룰’은 팔커 아이들 사이에서 새로운 인기 놀이가 되었습니다.
팔커 호수에서의 봄 소풍
아이들과 티라나에서 만나고 난 그 다음 주 토요일에 마리오가 자기네 할머니 집 근처에 있는 호수에 가서 같이 물고기도 잡고 아이들과 놀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마치 티라나에서 함께 보낸 시간에 대해 답례를 하는 것처럼 느껴져 흔쾌히 그러자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그 마을 안쪽에 자리한 푸른 초원이 펼쳐진 아름다운 호수가로 저희들을 안내해 주었습니다. 여기 저기 소들이 풀을 뜯고 있는 언덕을 한참 내려가 호수에 도착했습니다. 제지와 레디는 아직 물이 차가운데도 옷을 벗고 수영하러 호수에 뛰어 들었고, 플라크림과 여러 아이들은 플라스틱 병에 빵 조각을 넣어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그곳에서 준비해 간 게임도 하고, 사진도 찍어주고 아이들과 마음이 하나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어쩌면 예수님도 갈릴리 호수 가에서 제자들과 이런 시간을 보내시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감격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을 앉혀놓고 예수님의 산상수훈이라도 한 토막 들려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그 날 오후에 마리오가 할머니 댁에 잠깐 들리자고 해서 그 댁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자녀를 둔 마리오 할머니는 옛 집터에 새 집을 지어 살고 있었는데, 집안 구석구석을 안내하며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선반마다 코란이 놓여있는 것이 눈에 띄었고, 거실에도 이슬람 성지 사진이 걸려있었습니다. 성품이 온유한 마리오가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것을 느끼며, 이 가정이 주님께로 돌아오게 되길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 – 아이들과의 부활절 모임
계속해서 매주 아이들과 만나서 즐겁게 놀지만, 어느 시점부터 놀기만 하고 헤어지는 것이 왠지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이제는 뭔가 아이들과 말씀을 나누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부담으로 몰려왔고,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몰라 기도를 하던 중에 이 나라에서도 정교회나 카톨릭의 영향으로 부활절을 ‘파쉬크(Pashke)’라는 명절로 지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지난 번 크리스마스 때처럼 부활절 파티를 하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모두들 좋아하였습니다. 아이들에게 무슨 말씀을 전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이들이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하는 ‘목자’에 초점을 두어 예수님이 누구신가 소개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마을에는 소나 양을 키우는 집이 많고 아이들도 간혹 소를 돌봐야 하기에, 누구보다도 목자가 어떤 사람인지 잘 이해할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나누어 줄 계란에 ‘예수님은 선한 목자시다(Jezusi eshte bariu i mire)’라고 쓰고 예쁘게 포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번 처럼 호수에서 아이들과 재미있게 게임을 하고 난 뒤 ‘예수님이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셔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을 축하하는 날이 부활절이다’는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지난번 성탄절 때처럼 갑자기 분위기가 어수선해졌습니다.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당황하고 있는데, 아이들 중 맏형 격인 알띤이 나오더니 자신이 대신 원고를 읽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절반이 남은 원고를 넘겨주었더니 말이 서툰 저와는 달리 시원시원 하게 읽어 내려가더군요. 덕분에 아이들이 끝까지 준비한 메시지를 들을 수 있어 감사하였습니다. 설교문을 읽어 내려가는 알띤을 보며 저희 부부는 ‘알띤이 혹시 나중에 알바니아의 훌륭한 설교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제지가 저에게 왜 이슬람을 따르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혹시나 오늘 메시지를 듣고 예수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나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슬람과 기독교의 차이는 ‘은혜’에 있다고 이야기를 하며 마을로 향했습니다.
팔커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알바니아의 최대 종교는 이슬람교입니다. 전체 인구의 70%가 자신을 스스로 무슬림이라고 말합니다. 저희가 방문하는 팔커 마을도 주민들 대부분이 무슬림입니다. 머리에 흰 모자를 쓰거나 수염을 기르지 않아도 이들 모두 자신은 무슬림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조차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면 갑자기 자리를 뜨거나 듣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하면서 때때로 저희 자신이 마치 적진 속에 깊숙이 들어와 싸우는 야전병(野戰兵)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같은 알바니아 안이지만 전도가 비교적 자유로운 시내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이곳에 낯선 이방인으로 찾아와 삶을 나누고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때때로 아이들이 갖고 있는 내면적인 어려움들이 거칠게 드러날 때마다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지혜가 부족함을 많이 느낍니다. 그러나 이들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을 의지하여 날마다 예수님을 좇아 섬기는 저희가 되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이들이 속히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한복음 10:11)
그럼, 더워지는 날씨 속에서 다음 소식 전할 때까지 강건하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2011. 5. 18
티라나에서 나무가족(동윤/인혜/형석/형민/형범) 드림
* 기도 제목
1. 날마다 주님과 만나는 시간이 깊고 풍성하도록(새벽을 깨울 수 있도록)
2. 팔커 마을 사람들을 위해서
– 하나님이 예비하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한 가정이 열리도록)
–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여름 동안 아이들과 의미 있는 모임을 지속할 수 있도록
– 아이들의 필요를 잘 발견하고 섬기는 것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나타내고,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 지속적으로 말씀을 나누고 양육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도록
3. 주변의 이웃들, 만나는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고 복음을 나눌 수 있도록
(특별히 싸이밀 가정, 멘따 가정과 성경 말씀을 나눌 수 있도록)
4. 5월 8일에 치뤄진 알바니아 지방 선거 후 정국이 안정되고, 선출된 새 지도자들이 공의 롭게 나라를 잘 이끌어갈 수 있도록
5. 5월 28일-31일까지 알바니아를 방문하시는 영화교회(파송교회) 담임 목사님 및 함께 하시 는 분들의 건강과 안전한 여행을 위해, 은혜롭고 의미 있는 교제의 시간을 갖도록
6. 5월 29일 어린이 주일을 맞아 쉬프레사 교회가 주변 어린이들을 초청하려고 하는데, 어린이 예배와 공원에서의 야유회를 은혜롭게 잘 준비하고 섬길 수 있도록
7. 6월에서 8월까지 3개월간 안식월을 갖게 되는 김용기 선교사님 가정이 한국에서 좋은 쉼과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이 기간 동안 저희 가정이 쉬프레사 교회 지체들과 함께 예배의 자리를 잘 지킬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8. 양가부모님께서 주안에서 건강과 평안을 잘 유지하시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