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양육 이야기-도미니카 공화국 김영구,김보원 선교사

18년째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선교사역을 하고 있는 김영구, 김보원 선교사의 현지인 제자 양육 이야기

한번은 우리가 대학생 사역을 할 때부터 제자 양육을 받은 약 16년 된 수제자인 크리스챤 형제(부인 메리)가 찾아 와서 자기가 자동차를 새 차로 바꾸려고 하는데 중인데 나에게 약 600불을 도와 달라고 하였다. 나는 이 형제에게 “지금까지 내가 너에게 가르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어떻게 나에게 금전적인 도움을 요구하느냐? 아직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고 야단쳤다.  야단을 친 이유 중의 하나는 이미 재정적으로 사역적으로 독립한 형제가 우리를 의지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고 다른 이유는 나를 마치 자기가 필요할 때 돈을 대주는 사람 정도로 여길까 두려워서였다. 선교사가 현지 사역자들과 돈으로 연결 될 때 선교사는 사역자를 귀한 형제로 보기 보다는 돈을 받고 일하는 일꾼으로 여기기 때문에 진정한 양육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결국은 그 제자를 잃게 된다. 이 일이 있은 후에 내 얼굴을 몇 번이나 피하는 것을 보았다. 부끄러워서인지 상처를 받아서인지 나를 보지 않으려 하였다. 매달 우리가 개척한 교회들이 모여 연합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이 예배 때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미국 한인 PCA (장로교)교단에서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선교대회를 열게 되었다. 현지인 2명을 무료로 호텔에 머물며 세미나를 참석 할 수 있게 배려하였다. 이때 다른 현지 역자 부부도 많이 있었지만 이 형제 부부를 특별히 불러 호텔에 함께 머물며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다. 세미나 후에 식사 시간이나 휴식 시간에 다시 내가 형제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핵심을 조목 조목 이야기 하였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재물을 주신 것은 딱 5번 밖에 없으셨다. 가나의 혼신 잔치, 물고기와 빵으로 많은 사람을 먹이신 사건 2회, 베드로에게 많은 고기 잡도록 하신 것 2회다. 부요하시고 능력 많으신 예수님께서 부와 권력으로 사역하시지 않으시고 말씀과 사랑으로 하셨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한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예수님의 식사 대접을 하였다. 나도 예수님처럼 너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너의 식사 대접을 당연히 받고 싶다고 이야기 하였다. 말씀을 가르치는 선교사와 네 재물을 나누는 것이 도리다고 이야기 하였다. 너에게 필요한 것은 물고기를 잡는 방법이지 물고기가 아니라 이야기 해주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올바른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오신 것이지 제자들의 경제적인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네가 말씀 안에서 든든히 서는 것이라 이야기 했습니다. 나에게 재물을 받으면 나의 종이지 나의 친구는 될 수 없다. 말씀을 나누는 것이 너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고 내가 선교지에 존재하는 이유라 생각 한다고 이야기 해주었다. 3박4일 동안 식사 때 마다 이 형제 부부와 함께 이야기를 하며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예수님처럼 재물로 제자를 삼지 말아야 한다. 선교사 옆에는 재물 때문에 선교사를 섬기는 현지인들이 모여들 때 현지인 사이에 서로 싸움과 분쟁이 끈이지 않는다. 때문에 선교사는 자신의 주위에 돈 때문에 머물고 있는 사람을 과감하게 정리해야 한다. 설사 선교 사역이 잘 되지 않더라도 재물 때문에 따르는 현지인을 물리 칠 수 있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 돈을 가지고 하는 모든 사역을 중단하고 예수님의 말씀과 사랑으로 하는 사역을 시도해야 한다. 예수님은 부와 명예와 능력을 다 가지신 분이시었지만 재물이 아니라 사랑과 희생으로 제자 양육을 하였다. 재물로 사역을 하는 이유는 아주 쉽게 사람들을 구하고 함께 많은 사역을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질로 수많은 현지인들이 모여 들고 아주 똑똑하고 신실한 제자가 주위에 많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돈이 많이 있으면 땅도 구입하고 교회와 학교도 짓고 선교관도 건축 할 수 있다. 돈으로 지어진 건축물을 보고 마치 많은 선교를 하고 있는 선교사로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에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신실한 제자들이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이다. 현지 언어를 익혀 현지인들을 사역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수고를 해야하지만 현지인을 고용하여 사역하기는 매우 쉽기 때문이다. 이렇게 형성된 제자들은 스승을 존경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마귀의 권세인 돈과 권력과 부귀와 영화에 굴복한 제자들이기 때문에 좋은 선교의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이다. 한 선교사가 현지인 사역자를 고용한다고 하였더니 이력서를 들고 지원한 현지 목회자들이 줄을 섰다. 몇년 동안 수많은 교회를 개척하였으나 이 선교사가 선교사역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 간 후에 이 선교사가 개척한 교회와 사역은 그날로 끝이 났다. 많은 한국 선교사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이곳에서 하던 선교사역을 포기하고 귀국하였을 때 그 선교사를 통하여 몇년 동안 이루어 왔던 선교 사역이 흔적도 없이 깨끗이 없어지는 것을 보아 왔다. 이런 슬픈 이야기는 계속해서 선교지에서 일어나고 있다. 때문에 이곳에 있는 선교 역자가 깊은 남침례교회 교단 선교사들은 절대로 재물로 사역자를 고용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초기 한국에 온 서양 선교사들이 선교의 원칙으로 행한 네비우스 3자 원칙을 잘 연구하면 선교지에서 어떻게 선교해야 올바른 선교인가를 알 수 있다.

크리스챤 형제 부부와 우리가 마침 참석한 선교대회의 주제는 성령님에 관한 것이었다. 성령님을 만나고 동행하는 방법에 대하여 주제 설교를 해 주셨는데 얼마나 많은 은혜를 받았는지 모른다. 약40명의 미주 장로교회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선교지의 선교사와 현지인을 말씀과 식사로 대접하는 특별한 선교대회 였다. 사실 우리 부부는 어떤 대형교회에서 목사님이 자기와 교회 이름을 내기 위하여 장로님들을 대동하고 선교사들을 불러 호텔에서 세미나 하는 것에 대하여 별로 좋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잘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대회는 주님께서 마련해 주신 은혜의 찬치인지 선뜻 참석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대회 기간 중에 찬양사역자인 김보원 선교사가 특송 순서에 들어가 있지 않아  겸손하게 대회에 열심히 참석하여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자고 하였다. 2째날 아침 새벽기도회에 다른 사람보다 1시간 일찍 나가게 되었다. 마침 대회 진행 위원장이신 강준원목사님께서도 혼자 일찍 강당에 도착하였으나 전등도 켤 수 없고 강당 문도 잠겨 있었다. 강목사님를 도와 강당의 전등을 켜고 문을 열게 되었다. 이때 강준원목사님께서는 아내 김보원 선교사가 좋은 특송자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었다면서 아내에게 특송을 개인적으로 요청하였다. 나는 프로젝트를 잘 운영할 수 있는데 대회 중에 프로젝트가 없는 것을 보고 내가 섬길수 있다고  어제 저녁에 이곳 한인 선교사 협의회 회장을 통하여 이야기 드렸는데 프로젝트를 내가 상영해도 되는 것이냐고 다시 여쭈어 보았다. 강준원목사님께서 이야기를 들었다며 흔쾌히 승낙하시고 광고 시간에 김보원 선교사의 특송과 나의 프로젝트 상영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말씀하셨다. 이상한 것은 미국에서 만들어 온 내 명찰에는 분명히 영상 담당자라고 적혀 있었는데 무슨 착오인지 나에게 프로젝트를 상영하라고 말해준 사람이 없었다. 나는 10여년 동안 설교를 할 때는 꼭 파워포인트를 이용한 프로젝트를 사용하여 왔기 때문에 집회 기간 중에 영상을 만들어 상영하는 일은 자신이 있었다. 2째날 새벽 기도 후에 아침도 먹지 않고  집에가서 프로젝트를  가지고 와서 오전부터 상영을 하였다. 마침 오후에 은혜 선교회 선교관 방문 중에 은혜 학교를 방문한다고 하여 점심도 먹지 않고 손님들이 방문할 것을 대비하여 일찍 학교로 출발하여 부지런히 학교 주변 청소를 하였다.

저녁 특송을 대비하여 집에서 CD 플레이어를 가지고 왔는데 늦게 도착하여 저녁 식사 할 시간이 없었다. 저녁 예배 때 아내는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고 화장도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였으나 나는 아내에게 예배 시간 전에 자리를 지키라고 조언하였다. 그 이유는 종종 순서를 맡은 사람이 자리에 없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을 경험하였고 이번 집회에는 아내가 내 옆에 그냥 있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김보원 선교사는 고맙게도 나의 조언에 순종하여 예배시간 처음부터 자리에 앉아 있었다. 저녁 예배가 시작되자 대회장이신 강준원목사님께서 강사가 늦게 도착하였는데 오늘 저녁 특송자인 김보원 선교사가 찬양을 한 곡 더 미리  불러 주었으면 좋겠다고 요청 하셨다. 아내는 기꺼이 찬양을  하였고 그 후에 다시 특송도 하였는데 성령님께서 역사 하셔서 특별한 메시지를 찬양 중에 모든 사람들에게 들려 주셨다. 찬양을 한 아내 김보원 선교사도 성령님께서 찬양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것을 체험하였다고 하였다. 셋째 날 저녁에도 특송을 부탁하였으나 아내는 자신이 계속 찬양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겨 정중하게 거절하였다. 하루 종일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봉사를 하였다. 비록 이곳에 오신신 많은 손님들을 일일히 만나 뵙지 못하였지만 우리가 가진 달란트를 성령님의 인도에 따라 사용하여 모든 대회 기간 중에 마음을 다하여 봉사하며 귀한 현지 제자 크리스챤 부부와 가까이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어 우리들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우리가 대회를 섬긴 것을 함께 지켜 보았던 크리스챤 형제 부부와 더욱 가까워진 것 같다. 그리고 봉사란 것이 무엇인지 보여 주는 계기가 되었다.

크리스챤 형제는 사실 자동차1급 정비 기술자로 먹고 살 만큼 수입이 있다. 그러나 다른 한국 선교사와 일하고 있는 크리스챤 친구들이 한국 선교사에게 많은 것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잠시 유혹에 빠진 것 같았다. 나의 말과 진심을 이해한 이 형제 부부의 얼굴에는 성령님이 주시는 평화가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에 크리스챤 형제는 아주 작은 소형차를 스스로 구입하였다. 형제의 아내인 메리 자매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이번 주에 외국 의료 기관 부서 책임자로 발탁되어 월 약 600불 (이곳에서는 좋은 수입)정도를 받게 되었다. 크리스챤이 내게 요구하다 거절된 600불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공급하는 매월 600불의 소득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메리자매가  많은 부분 목회를 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드는 의사 직 보다 비교적 자유롭게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외국 기관 연구직에 취직하여 일하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특별히 축복해 주셔서 목회 하는데 시간과 재물의 염려를 하지 않도록 해 주셨다. 거의 16년간 우리와 함께 하며 2군데 의대와 임상병리학 신학교를 졸업하여 목회와 부속학교 돌보는 일과 의료 진료를 함께 하고 있는 이 자매가 대견스럽다. 약5-6년 전부터 이 자매가 담임하고 있는 교회를 위해서는 전혀 선교헌금 보조를 하지 않고 있고 독립적으로 학교와 교회 사역을 하고 있다. 이교회성도와 우리가정을 통해서 지금의 은혜교회가 태어났다. 메리 자매가 비젼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이 사회의 리더로 자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자매는 우리 부부에게 고기 잡는 법을 배운 제자라 생각한다.

메리, 크리스챤 가정은 앞집에 살고 있는 성도가 남편 없이 아주 어렵게 살고 있는 것을 보고 그 성도의 아들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함께 살면서 마치 자기 아들처럼 돌보고 교회와 학교 일도  함께 섬기며 공부를 시켜 내년에는 의과 대학에 입학 하게 된다.우리에게 제자 훈련을 받은 것처럼 좋은 일꾼을 키워 나가고 있다. 메리 자매의 남편은 마음이 아주 따뜻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 자신의 아버지를 모시고 또한 많은 형제들도 잘 보살피고 있다. 한번은 우리 부부가 찬양 교회 부속학교 건축을 위하여 돈을 다 써버렸기 때문에 연말에 아주 고생한 적이 있었는데 어느 날 메리 크리스챤 가정이 차에 약100불정도나 되는 많은 식료품을 사가지고 찾아와서 “선교사님 걱정 마세요. 선교사님이 어려울 때 저희가 도울께요.”라고 하였다. 외 아들이 말썽을 많이 피워 걱정이었는데 요사이 아주 의젓해져 우리를 기쁘게 한다.

지난 주에 침례식이 있어 큰 학교 버스를 빌려 보까치까 비치에 가게 되었는데 선교집회 참석 때 마음의 상처가 깨끗하게 치유된 크리스챤 형제는 아침 7시 부터 부지런히 버스를 빌려 5교회 침례 받을 장년 교인과 침례 받은 장년 교인들을 모아왔다. 우리 부부는 다른 때와 달리 처음으로 이 형제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고 직접 해변으로 가서 집회 장소를 렌트하고 성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적어도 11시에는 도착해야 하는데 12시쯤에 도착하였다. 10시에서 부터 비치에서 기다리면서 이상하게 마음속에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이곳에 도착하여 몇 년 간은 현지인들이 약속을 30분 이상 늦으면 화가 나서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 그러나 18년 동안 도미니카 공화국에 있어서인지 2시간 늦어도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차를 빌려 가지고 온 이 형제는 저희 부부가  언찮았을  것이라 예상하였지만 전혀 화를 내지 않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이 형제에게 슬며시 웃으며 침례식과 성찬식만 하면 되지 조금 늦은 것이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했다. 5교회가 함께 오다 보니 몇 교회가 늦게 도착하였기 때문이다. 형제는 나에게 “왜 이렇게 약속을 잘 지키지 않아 늦게 도착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면서 흥분하였다. 그러나 나는 형제에게 늦게라도 잘 도착하였으니 다행이라고 하면서 12시가 넘었기 때문에 예배를 드린 후 식사를 하자고 하였더니 절대 안 된다고 하면서 예배와 침례와 성찬식을 다 마친 후에 식사를 하자고 하였다.

사건 중심 문화권에서 살고 있는 시간 중심 문화권에서 살았던 현지 선교사의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을 지키지 않는 현지인을 무시하는 것이다. 현지인이 약간 늦게 온 이유는 보통 이런 큰 행사 때는 1시간 정도는 늦게 시작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문화를 가졌기 때문이다. 지금 이야기 하고 있는 메리 크리스챤 형제가 우리 선교관에서 결혼식을 할 때 6시에 결혼식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6시에 시간을 맞추어 오신 몇몇 한국 선교사들은 6시30분이 되어도 결혼식이 시작되지 않자 지처서 결혼식 참석을 포기하고 부조금만 내고 모두 가버렸다. 결국 결혼식은 7시 경에 시작 되었다. 아마 한국 선교사들은 큰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고 현지인들은 일찍와 결혼식도 참석하지 않고 가버린 한국 선교사들의 행동을 무례하게 여겼을 것이다. 결혼식에 참석한 현지인들은 모두 기뻐하며 케익을 자르는 저녁 늦은 시간 까지 있었다.

사역초기에 이곳에서 미국 선교사가 주최하는 문화 인류학 세미나에 참석하였는데. 수업 마지막 날에 강사이신 현지 문화 인류학 교수가  자기 집에서  오후 6시에  종강 파티를 한다고 하였다. 우리 부부는 5시 50분 정도에 교수님 집에 도착하여 차에서 10분 기다리다가 벨을 눌렀다.그런데 웬일인지 현지 문화인류학 교수님께서는 옷도 제대로 입지 않으시고 우리를 당황스럽게 맞이하였다. 물론 아직 파티를 위하여 아무런 준비를 하고 계시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멍청히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거실에서 약1시간 동안 기다려야 했다. 물론 현지 문화를 무시한 우리의 잘못이었다. 약 1시간 후에 미국 선교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국 선교사들은 현지 문화를 알고 적용한 것이다.

한번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특별집회를 호텔에서 한다는 초대장을 보내왔다.  오후 5시에 집회가 있다고 해서 5시에 맞추어 호텔에 갔으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하도 이상해서 카운트에 물어 보았더니 집회가 있다고 했다. 집회 장소에서 30분을 기다리니 처음으로 목사님이 오셨다. 그리고 집회는 6시에 시작하였다. 보통 특별집회 때 목사는 약 30분 전에 나타나면 된다. 정시에는 집회 장소에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 현지 문화이다. 정시에 오는 사람은 이 나라 문화를 잘 모르고 실수한 것이다.

대학생 사역을 할 때 버스를 빌려 대학생들과 라로마나의 알또데 차봉으로 야회 집회를 간적이 있다. 집회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 올 때 사건이다. 오후5시까지 버스를 타는 곳으로 모이라고 하였다. 마침 비가 내렸는데 우리 부부가 버스에 도착해 보니 운전수가 없어 버스 문을 열 수 없었고 비를 피하며 밖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약30분 후에 버스 운전사가 나타났다. 벌써 약속을 지키지 않은 운전사 때문에 화가나 있는 우리에게 다른 참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모든 학생들이 버스에 탔는데 한 그룹 4명의 학생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약 30분 후에 이 형제들이 돌아왔다. 나는 너무 화가나 말을 못할 지경이었다. 한참 생각하다 다른 대학생에게 물어 보았다. 저 학생들이 늦게 도착하여 너희는 얼마나 불편했느냐? 학생은 약간 불편 했으나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하였다. 폭발 직전까지 갔던 우리 부부는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사건 중심 문화에서는 시간과 상관없이 하고자 하는 행사만 멋지게 하면 된다.  현지인들에게 집회가 조금 늦게 시작하여 불편한 사람이 있느냐고 물어 보면 아무도 불편한 사람이 없다고 대답하는 것이 이곳 문화다. 그리고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오지 않았다고해서 큰 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 오지 않았냐고 책망을 하면 사람을 잃게 된다. 약속한 사람이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약속 날짜 전에 미리  한번 더 확인을 받아야 하는 것이 관례이다. 그러나 시간 중심의 문화권에서 살다 온 선교사는 한 30분 늦게 나타난 현지 목회자를 사람같이도 보지 않고 책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나쁜 관습은 없애야 이 나라가 발전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제자들에게 철저하게 훈련시키려한다. 많은 선교사들이 시간을 잘 지키게 된 자신의 제자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는 것을 종종 듣는다.  제자 훈련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지인들의 문화를 잘 받아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신뢰를 많이 쌓은 뒤에 서서히 성경적인 원리를 통하여 스스로 고쳐 나가도록 인도해야 한다. 사건을 볼 때 내가 가진 문화로 사건을 해석하지 말고 상대편 문화 속에서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를 항상 생각해야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이날 해변 비치에서 설교를 할 때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섬기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말씀을 나누었다. 여러분이 오늘 이곳에 도착하기 위하여 우리의 리더 크리스챤 형제는 7시부터 버스를 빌리고 지금까지 수고 하였다. 우리 부부도 침례와 성찬과 점심 식사를 위하여 여러 가지 준비를 하였다. 진정한 리더십은 수고하고 섬긴 사람이라고 설교하였다. 아마 이 형제는 크게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아내도 많은 수입이 있는 좋은 직장을 얻었기 때문에 사역을 하면서 가정을 꾸리어 나가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제자가 잘 될 때 리더의 마음속에 뿌듯함이 있다. 이번 침례식에는 16명이 침례를 받았는데 모두 성령 충만하기 때문인지 은혜로 왔다. 침례를 받을 때 해변에서는 김보원 선교사와 교회 리더들이 은혜롭게 찬양을 하였다. 내년에는 차 한대를 더 빌려 더 많은 사람들이 침례식에 참석 할 수 있도록 할 작정이다. 침례식 후에 함께 모여 식사를 하였는데 각 교회가 싸온 음식과 우리가 특별히 준비한 구은 통닭 6마리를 나누어 먹었다.

우리의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찬양의 메아리는 아름다운 카리브해의 물결을 타고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속으로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다니는 목자의 마음으로  흘러나가 하늘의 아버지게 올려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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