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준/박효진[독일]2016.03.09.

사랑하는 선교 동역자님들께 (장원준선교사 가정 201612월 선교서신)

 

할렐루야! 그 동안도 주의 은혜 가운데 평안하셨는지요?

조금 늦은 선교편지를 올리게 되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제가 약 2주간(2월22일~3월 5일) 교회 청년 1명과 저희 가정을 그동안 계속 후원해 주신 오스트리아에 사시는 후원자님과 캄보디아 선교지를 다녀왔기 때문입니다.

이번 캄보디아선교지 방문은 제게 매우 뜻 깊은 방문이었습니다. 10여 년 간의 캄보디아 사역에서 첫 번째 사역지를 물려받은 제 후임 이정훈 선교사 가정이, 제 아내가 다니던 모 교회인‘서울 평화교회’의 후원을 받아 그 곳에 현지인 선교의 새로운 장을 여는 선교센터를 건립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선교센터를 건립했을 뿐만 아니라 그 센터를 오랫동안 함께 사역해 온 아주 신실한 현지인 사역자에게 그대로 이양하여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교회로 자립하여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되게 해 준 건강한 결과로 하나님 앞에 영광 돌렸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그들은 주님의 뜻과 바람으로 자신들의 신앙을 더욱 굳혀 나가는 좋은 신앙인들로 성장해 가기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주의 영이 임한 사람인 것처럼 그들 스스로, 스스로를 돕고 영적 배가는 물론 미신과 우상으로 가득 찬 그 땅에 주님의 복음의 능력을 선포하여 많은 익은 곡식을 거둘 그날을 바라보며 저는 축복하며 지금도 기도합니다. 또 하나 감사했던 것은, 사실 이것이 이번에 제가 캄보디아를 방문한 주된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2004년 저희 가정의 사역을 돕기 위해 왔다가 그곳 ‘깜뽕싸옴’의 바다에서 순교한 ‘이민재 단기 선교사’를 기억하실 줄로 믿습니다. 자신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선교사들의 삶에 경각심을 주고 또 그 가정 전체를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만들었던 청년 선교사 이민재 선교사의 삶은 이후로도 늘 저희 사역의 핵심으로 작용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당시 동료 미국선교사님(Assembly of God의 Mark선교사)이 우리 가정에게 배려해 주어서 저희는 이민재 선교사의 순교 기념비를 ‘사랑의 교회 故옥한흠목사님’의 배려와 후원으로 동료 선교사님의 공원묘지에 건립할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이었으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에 가능한 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그 공원묘지가 그곳 시(市)에 매각되었고 ‘이민재 선교사의 기념비’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만 했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서울 ‘평화교회’에서 그곳에 현지인들을 위한 선교센터를 건립해 주셨고 이정훈선교사는 평화교회와 현지인들의 허락을 받아 이민재 선교사의 순교 기념비를 그 선교센터의 한 곳으로 옮길 수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저는 다시 캄보디아를 방문하길 원했고 그래서 저는 제가 소속된 단체인 ‘한국 개척선교회’(Global Missions Pioneers)의 허락을 받아 선교지를 2주간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던 것입니다.

저는 계속해서 캄보디아에 우상의 그늘들이 벗겨지고 새로운 젊은 세대들이 그리스도의 복음 속에서 자유하며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주의 날을 준비하고 예비하는 놀라운 역사들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캄보디아에는 벌써 많은 순교자들의 피가 흘려져 있었고 하나님은 이를 기쁘게 받으신 줄로 믿습니다.

 

이번 선교지 방문을 위해 저는 계속 캄보디아에서 사역하고 계시는 옛 친구 선교사님들을 방문하는 기회도 가졌습니다. 저와 함께 모터싸이클을 타고 오지를 방문하고 복음을 전했던 ‘대니 에반스(Danny Evans)선교사’는 올해 63세로 은퇴하여 작년에 미국으로 귀환했고 아직 캄보디아에 남아 사역하고 계시는 ‘데이브 에브릿'(Dave Everitt 61세)선교사는 감사히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데이브선교사님과 저는 현 캄보디아선교의 동향과 유럽선교의 동향, 미국과 한국의 영적상황들을 자세히 나누었습니다. 결코 좋은 상황과 결론은 아니었지만 함께 주님의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함에 의견을 모았습니다. 데이브선교사님은 앞으로 4년 뒤에 은퇴한다고 말했습니다. 은퇴한 뒤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 물었더니 선교지와 선교사들과 세계 선교를 위해 중보기도하는 사역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정말 선교사다운 말이었습니다. 저는 데이브선교사님과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저의 두 번째 사역지였던 ‘꺼꽁’에서 저의 후임선교사님 집에 머물며 함께 동역했던 ‘휴버트선교사님(74세) 가정’을 오전에 잠시 방문했습니다. 휴버트선교사님은 아직도 예전에 그 집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저를 보시더니 굉장히 반가워하시며 맞아 주셨습니다. 저는 저녁에 함께 캄보디아를 방문한 우리 교회 청년인 황경민형제와 준비해간 작은 선물을 가지고 다시 휴버트선교사님 가정을 방문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내 메리 선교사님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메리 선교사님은 아직도 그곳 ‘꺼꽁의 도립병원’에서 가정의학과 의사로 일하고 계셨습니다. 두 분 모두 변함이 없으셨습니다. 저는 ‘뮌헨음대 석사과정’을 하고 있는 우리 교회 경민형제를 소개해 드렸더니 기뻐하시며 자신들을 위해 피아노를 연주해 줄 수 있겠는지 물어보셨습니다. 그래서 경민형제는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선교사님들이 듣고 싶어 하시는 찬송가와 피아노 명곡 소곡을 잇달아 몇 곡 계속 연주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선교사님들은 깊은 감동을 감추지 못하고 기뻐하시며 연주가 끝난 후 감격 속에서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려주셨습니다. 저희 모두에게 하나님의 깊고 크신 은혜가 임하는 밤이었습니다.

휴버트선교사님은 북부아프리카에서 4년, 베트남에서 7년, 캄보디아에서 20여년 가까이 선교사로 섬기셨습니다. 선교사님 부부는 올 해 7월에 은퇴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럼 미국에서 계실 것인지를 여쭈었더니 그건 오직 주님만이 아신다고 대답하시고 활짝 웃어주셨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선교사만이 할 수 있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렇게 휴버트선교사님과 메리 선교사님과 작별한 후 저희는 몇 몇 친했던 한국 선교사님들을 더 만나 뵙고 아쉽게 캄보디아를 떠나와야 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가 알아줌을 원함도 없이 우리 선교사님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제 후임 ‘이정훈선교사’는 올 4월부로 캄보디아에서의 13년간의 사역을 마치고 한국으로 철수하게 됩니다. 그는 정말 캄보디아의 오지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사역지도 현지인들에게 건강하게 이양하고 이제 그는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이정훈선교사 가정의 앞날을 위해서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계속해서 아래와 같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장원준 · 박효진(근용·미연) 선교사 가정 기도제목

  1.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주의 영광만을 위해 사역하도록
  2. 맡겨주신 레겐스부르크 연합교회가 성령 충만하고 주 안에서 성장하도록
  3. 사역의 지경을 넓혀주시고 주의 인도하심 따라 나아가도록
  4. 가족의 건강과 근용이, 미연이가 학업으로도 하나님 앞에 잘 준비되도록
  5. 사역에 필요한 것들이 잘 채워지도록

늘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신 동역자님들께 감사드리는

장원준선교사 가정 올림.

 

후원계좌_외환은행 303-04-00000772 한국해외선교회

문의_02.337.7191, gmfm87@naver.com

About the Author

우리의 섬김, 그들의 교회, 하나님의 나라